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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82년생 김지영

몽염이 2020. 9. 1.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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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창 논란의 중심에 서있던 [82년생 김지영] 영화를 이제 보았다.  논란이 되었던 것 만큼 애써 부드럽게 만들어 놓은 내 마음이, 그리고 신랑과의 관계가 무너지고 그 여파가 아이들한테 까지 미칠까봐 무서워서 내내 보지 못하고 있었다.  다시 코로나 감염자가 늘어나고 "어린이집 긴급보육은 가정주부는 이용하지 마시오!"라는 통보를 받은 후, 둘째와 가정보육이 확정되었는데도 그럭저럭 힘들지만 버틸만한 하루 인 것을 보고 이제는 봐도 되겠지~ 하고 보았다.  사실 [82년생 김지영]이 넷플릭스 TOP 순위에서 며칠 전부터 유혹하는 것을 참고 또 참다 터진 것이라고 봐도 되겠다.

  우울해질까봐, 내 현실이 또 나를 괴롭혀서 신랑과 애들을 괴롭힐 까봐 두려웠었다.  하지만 생각보다는 악당이 도드라지는 영화는 아니었다.  엄마로 써의 김지영(정유미 분)도, 아빠로써의 대현(공유 분)도, 시어머니도, 지인도 악당은 아니었다.  육아에 빠져 있으면서 막연하게 내가 꿈꿔왔던 엄마의 모습, 다시 복직을 혹은 새로운 꿈을 꾸다가!  어느 순간 심장이  쿵~ 하고 내려 앉듯이 현실이 밀려오면서 그걸 소화 시켜보려고 곱씹고 곱씹다가 정신차려보면 해가 중천이 어느 순간에 눈물이 톡톡 '우울증 인가?'하는 순간이 찾아왔을지도 모른다.  예전에 우울증에 헤매였던 나처럼.   

  아마 영화를 본 많은 육아맘들은 [B급 며느리]처럼 현실감 있지는 않지만, 육아맘으로 살면서 자기 자리를 찾으려고 싸우기 보다는 자꾸 엄마에 아내에 며느리라는 자리에 나를 꾹꾹 누르면서 어쩔수 없지 하면서도 다시 사회에 일원을 꿈꾸며 꿈틀대는 나를 누르다누르다 저렇게 이상하게 터져버린 그 옆구리가 시리고 안타까웠을 것이다.  

  아마 대부분의 남자들은 '남들 다 그렇게 사는데...'라는 구시대적인 충고나 위로를 건내서 된서리를 맞거나, 변해버린 아내에 모습에 화를 내거나,  대현(공유 분)처럼 살얼음판을 걷듯이 지켜보느라 용을 썼을 것이다.  그리고 영화를 보고는 화가 났을지도 모른다.  결국 잘못한 사람은 없는데, 나도 잘못하지 않았는데 왜 악당처럼 취급받고 느껴야 하는가 하고 말이다.

  나는 운이 좋게 대화가 잘 통하고 여유가 있으면 잘 도와주는 신랑을 만나서 6년째 육아맘으로 살고 있다.  돌이켜보면 마치 신랑이 악당인듯 화내는 날이 많았고, 아이에게 신랑에 대한 불만을 모양을 바꾸어 쏟아낸 날이 많았다.  사실 악당은 나였다.  영화에 나오는 조커처럼 나쁜짓을 마음먹고 한 것은 아니지만 엄마라는 자리에 대한 낯설음과 사회에 남아있지 않는 내 자리에 대한 불만을 자꾸 삐죽삐죽 나쁜 짓을 하고만 것이다.

  하지만 사회도 조금에 책임은 있다.  20대에 육아생활을 짐작만 해보았을 그 때, 육아는 2~3년 정도만 하면 남편과 그 분량(적어도 애들 재우기, 씻기기 정도라도)을 나누고 사회 진출 할 수 있을 줄 알았고, 애들이 어린이집을 가면 잡안일이 줄어드는 줄 알았고,  애들이 WORK DAY만큼은 어린이집 꼬박 가거나 가끔 결석하는 것인 줄 알았고(둘째는 돌 이후 어린이집 등원때 한달에 1/3정도 출석 했다),  육아에 피로도 때문에 몸이 이렇게 자주 많이 아플지도 몰랐다.  

  회사 생활도 한해 한해 연차가 쌓이면 이직을 꿈꾸거나 승진을 꿈꾸게 된다.  신랑같은 경우에도 일한만큼 고가가 안나와서,  승진이 누락 될 뻔 하면서 멘탈이 털린 적이 있었다.  그리고 내가 산후우울증으로 상담 받았을 때, 상담선생님도 신랑같은 경우로 우울증이 생겨서 상담오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고 하셨다.  하지만 육아에 경우에는 승진, 고가, 월급, 퇴사 등에 옵션이 없다.  지금도 과거에도 그게 참 힘들었다.  돌 전 후, 내 끼니 챙길 시간도 없을 때,  '하~이걸 언제까지 해야하지~ 좀 크면 밥은 씻는 거라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으려나'하는 생각이었고, 애들이 어린이집을 가게되고 조금 여유가 났을 때는 '직장을 구하고 싶은데, 애들 아플때 마다 편의를 봐줄 수 없을텐데... 역시 파트타임을 해야하나'가 주된 고민이었다.  애를 키우는 초반 몇년이 힘든만큼, 사실 가장 절실한 것은 퇴사이지만 그걸 할 수 없는 벽에 자꾸 부딪히게되면 자꾸만 좌절하고 속상해 하다가 사람이 좀 이상해지기도 하는 것이다.

  작은 부탁이 있다면,  육아 동지가 있는 남편들이 [82년생 김지영] 영화를 많이 봤으면 좋겠다.  영화를 보고 대현(공유 분)처럼 도와 달라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남편들이 악당이라는 것도 아니다.  육아라는 일이 집에서 노는 여자가로 보일만큼 쉬운 일은 아니라는 것,  그리고 그만둘 수 없는 답답함,  사회에 일원으로 혹은 돈을 버는 생산적인 일을 하고 싶지만 잘되지 않는(아이 하원시간은 어린이집4시, 유치원 2시, 초등학생 1시 라죠~) 현실에 속상한 마음을 조금만 알아 줬으면 좋겠다.  '나는 엄마처럼 살지 말아야지' 라고 생각하고 뛰어는 결혼생활, 육아지만 그게 참 마음대로 되지 않아 속상할 뿐이다.  육아하는 모든 엄마가 김지영(정유미 분)처럼 증세를 보이지는 않지만,  한번씩 두번씩 큰 속앓이를 하고 넘어가지만 내색하지 않아서 모를 뿐 다들 비슷비슷하게 살거나 나보다 더 힘든 상황에 놓인 경우가 많았다.

  그냥 속상하다는 이야기다.  안아주고 위로해주면 좋겠다.  나 같은 경우에는 김지영(정유미 분)의 눈치를 보는 대현(공유 분)을 보면서 참 마음이 아팠다.  우리 신랑도 내가 마음이 아팠을 때, 저런 모습 저런 눈빛이 었겠구나... 참 힘들었겠다...   그리고 지는 노을 창밖을 바라보는 텅빈 눈에 김지영(정유미 분)의 모습을 보면서 힘들었을 때 우울했을 때 내 모습 같았다.  과장되지도 꾸며지지 않은 그때 내 모습 다큐멘터리 같았다.

  지금 마음도 몸도 제자리를 찾아가는 요즘은 애들과 신랑에게 화내고 소리지르더라고 이내 웃을 수 있는 유연한 모습으로 돌아가는 중이다.  영화속 김지영(정유미 분)이 출구를 찾아 나간 것 처럼, 육아가 주부라는 직업이 벽처럼, 갇혀있는 것 처럼 느껴진 다면 신랑과 아이에게 기대지 말고 내 방식대로 내 자리를 스스로 찾아야 할 것이다.  처음 블로그에 내 이야기를 쏟아내고 시원했던 기억이 난다.  나도, 신랑도, 또 육아 동지들도 조금씩 내 자리를 찾아가면 좋겠다.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영화를 통해서 서로 아픈 부분을 토닥토닥 해 줄 수 있다면 더~ 좋을 것 같다.

    풋풋했던 20대는 돌아오지 않겠지만, 지금만큼 성숙 할 수는 없을 것이다.  

 

* [82년생 김지영] 중, 김지영이 상담중에 선생님과 나눈 대화

김지영 :

선생님~저는 지금 이렇게 사는 것도 좋다고 생각해요

누군가의 엄마 누군가의 아내로

그런데 가끔은 어딘가에 갇혀있는 기분이 들어요

이 벽을 돌면 출구가 나올것 같은데

다시 벽이고

다른길로 가도 벽이고

처음부터 출구가 없었던 것은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들면

화가 나기도 하구요

그런데 또 알겠어요

사실은 다 제 잘못이예요

다른 누군가는 출구를 찾았을텐데

저는 그럴 능력이 없어서 낙오한거예요

상담선생님 :

지영씨 잘못 아니예요

김지영 :

그럼 왜 저만 엉망일까요

상담선생님 :

예전에 화가나거나 답답하면 어떻게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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