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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

아이패드 그림그리기로 육아 우울증 날려버리기

몽염이 2021. 9. 17.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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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아 우울증이 심했을 때 기억이 번뜩 떠올랐다


  나는 참 열심히 사는 사람이었다. 학생 때 공부 할때는 열심히 안했는데~ 이상하게 사회 나와서는 참 열심히 살았다. 주어진 일을 다 해내기위해 내 잠을 줄여가면서도 일을 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인정받고 싶은 마음과 착한 아이 증후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내가 잠을 안자고 일을 하는 만큼 회사에서는 나를 인정해주었다.

  하지만 우연한 기회로 악의 고리를 끈을 수 있었다. 아빠가 폐암말기 판정을 받고 투병 중이셔서 주말은 고향인 부산으로 평일은 성남에 회사에서 내 자취방에 엉덩이 붙일 사이 없는 생활이 몇개월 지나다가 아빠가 돌아가셨다.

  그게 나에게 어떤 신호가 되었다. 나는 내 근무시간에 할 수 있을 만큼 일을 했고, 어쩔 수 없을 때만 야근을 했다. 그랬더니 내 평가가 안좋아졌다. 마침 부서를 옮긴 상황이었는데 새 팀장님은 "몽염씨~ 듣던거랑 다르네?"라고 하셨다.   하지만 나는 내 평판을 포기하고 건강하고 싶었다.    너무 잠안자고 열심히 일한 탓에 생리양이 줄고 생리기간도 짧아졌었으니까~ 젊어서 그런지 내 생활을 찾자 생리 문제는 괜찮아졌다.


  그리고는 결혼. 결혼 과정도 나에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남자친구 였던 신랑과 큰 문제가 생겼고 그걸 지겹고 뜨거운 싸움 끝에 "헤어질까? 결혼할까?" 기로에서 나는 결혼을 선택했다. 이때도 부부상담 선생님에 도움을 받았다. 6회 정도 남자친구랑 상담을 받았고, 이 상담으로 우리 관계가 좋아지기 까지는 1년 정도가 걸렸다. 아마 이 상담이 내가 육아우울증으로 허우적대다 삼당센터를 두드리는 계기가 되었겠지.

  결혼 후, 아기를 가지기 위해 회사를 그만 뒀다. 신랑과는 "아이를 낳을 계획이 있냐?"라는 이야기 끝에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신랑의 말의 마음이 반반이었던 나도 "그래! 아이를 가질려고 노력해보자"라고 했고 회사를 다니면서 할 수는 없다고 했다.

  그렇게 백수가 되고 일년 가까이 아이가 생기지 않았고, 이러저러 실랑이 끝에 인공수정으로 드디어 첫째가 생겼다. 인공수정 3차시도에 생긴 아이. 혹시 유산 될까봐 누워서 4개월을 지냈다. 아마 이때부터 내 열심히 모드는 슬슬 가동되었는지 모른다.

  아이를 위한 태교보다는 내가 보고싶은것, 먹고 싶은 것 먹으면서 지내야지 했지만 이때부터 조금씩 스며들었을 것이다. 뱃속에 아이와의 마음 거리두기 생각 보다 쉽지않았다. 출산 때도 "와~ 이제 끝났다"라는 생각이 들었고 태어난 아이가 신기했지만 모성이 퐁퐁 솟아나는 것 같지 않아서 "뭐지"라고 생각했었는데~ 첫째 아이와 함께한 3년 나는 아이에게 제대로 스며들었다.

  예민한 첫째. 통잠이 뭔가요~ 소리, 촉감, 말에 예민한 첫째에 지쳐가다가 내 시간이 조금씩 생겨서 여유가 나자 둘째가 생겼다. 둘째가 생겼을 때 맨 처음 든 생각은 "그럼 나 일은?"이라는 생각이었다. 둘째에게 미안했다. 다시 마음을 다 잡고 뱃속에 둘째와 3살인 첫째랑 임신기간을 보냈을 때 아마 내 우울증이 시작 되었던 것 같다.

  다시 열심히 하면 된다는 흔한 이야기만 믿고 열심히 육아를 하던 중, 애들과 실랑이 하며 본 창밖 풍경에 눈물이 툭툭 감옥같았다. 답답하고 힘들고 머리가 조이고 몸이 붕 뜬 느낌 이었다. 인터넷으로 육아 우울증 테스트, 육아우율증을 검색해 보다가 우연히 영통주민연합에 상담센터 홍보글을 보았다. 적힌 연락처로 현재 상태(그날도 애들이 잠들자 애들을 품에 안고 자는 방에서 눈물을 흘리던 중이었다)를 말씀 드리고 상담 약속을 잡았다.

아이패드 어도비 프레스코 어플로 그린 그림 입니다



  제일 먼저 물어 본 말이 "몇회나 하면 될까요?" 라고 했을 정도고 내 상태에 대한 자각이 없었다. 상담하기 전에 내가 생각한 내 우울증 강도가 100에 50이었다면, 상담을 하면서 드러난 나의 우울증 강도는 100에 가까웠다.

  내 우울증 상담 6개월, 첫째 놀이치료 8개월. 우리 가족은 큰 고비를 넘겼다. 이제는 육아 7년차, 둘째도 어느덧 4살이 되었다. 애들 등원 후, 놀이터에서도 핸드폰으로 틈틈히 패드로 틈틈히 내 시간을 찾아가고 있다.

  육아는 참 어렵다. 열심히 한다고 되지 않는다. 엄마가 행복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행복하지 않은 엄마는 아이에게 친절 할 수도 아이에 욕구를 읽어 줄 수 없다. 내 상처를 보기 바쁘기 때문이다.

  당장 돈이 생기는 일이 아니더라도 갑갑한 육아의 방에 숨구멍 하나 정도 뚫는 연습을 해보자. 아이가 어릴때는 10분, 20분, 30분 늘리다가 조금 크면 1시간 , 조금 더 크면 2시간 이렇게 늘리다보면 나처럼 주말에 내 시간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시간을 찾아내는데는 또 다른 어려운 과정이 있다.  바로 신랑에게서 내 시간을 얻어오는 것이다.  신랑은 육아 보다는 회사일에 매여있고 퇴근이 늦고 주말출근에 출근을 했다.   집에 있더라도 회사 전화를 받고 일하는 경우가 있었고, 피곤해서 제 역할을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싸웠다 참 많이 싸웠다.

  결국 내가 찾은 방법은 신랑에게 내가 필요한 시간 보다 더 시간을 주는 것이었다. 신랑도 육아에서 떨어져 있지만 회사는 쉬는 곳이 아니기에 시간이 필요했다. 처음에는 내 힘든 상황만 내세워서 신랑에게 시간을 달라고 요구했고, 우울증이 심했을 때는 신랑도 어쩔 수 없이 그 시간을 내 주었다. 나는 그전에 신랑이 땡겨 받은 시간이 있으니 당연히 견디겠지라고 생각했지만 그것도 아니었다.

  공부도 꾸준히 해야 성장하듯, 내 마음도 신랑의 육아도 꾸준함이 필요했다. 얼마전에 큰 싸움 끝에 나는 신랑이 평일에 공방가는 것, 운동가는 것, 지인과 약속을 다 허용해주기로 했고, 대신 주말을 얻었다. 매주 시간을 계산기로 두드려 본다면 상당히 불합리한 상태다.  하지만  나는 주말에 내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었다.

  아이들은 "엄마는 왜 우리랑 안놀아줘?"라고 불만을 표시 했다. "엄마는 아빠처럼 회사는 안다니지만 일 하고 있어~대신 일하고 와서 놀아줄께"라고 이야기 해주었다.

  그래서 나는 평일에는 틈틈히 , 주말에는 보통 12시부터 오후 6시까지 공부를 한다. 안드로이드 앱 만들기, 블로그 글쓰기, 유튜브 편집하기, 그림그리기 등 하고싶은 일을 그때그때 한다.

  오늘은 첫째가 열이나서 유치원을 못가는 날. 따뜻한 만두굿 한그릇을 올려주고 "티비 보면서 먹고 엄마 필요하면 불러"라고 이야기 하고 글을 쓰고 있다. 육아를 시작한 사람도, 육아를 하고 있는 사람도 얼마나 힘든 일인지 잘 알고 있다. 어렵고 참 힘들다. 하지만 힘들다고 주저앉는 것 보다는 사소한 것 부터 10분이라도 시작해보자. 나처럼 견디다 와르르 무너지는 것 보다는 사소한 시도가 나처럼 큰 시간을 가져다 줄지도 모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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